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29회 해설 (31번~35번)

답 :

3국 간섭에서 대한제국 출범까지

 

(가) 조선 주재 일본 공사인 미우라 고로가 일본 군대와

낭민들을 건청궁에 난입시켜 왕비를 시해함 - 1895년 10월

 

(나)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직후,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주일 공사가 외무성을 방문하여

하야시 타다스 외무 차관에게 랴오둥 반도를 청에 돌려줄 것을 요구 - 1895년 4월

 

(다) 심순택 등이 왕을 알현하여 여러 차례 황제로 즉위할 것을 진언했고,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도 이어지면서, 왕은 아홉 번의 사양 끝에 이를 수용 - 1897년 10월 

 

(라) 러시아 장교 4명과 수병 100여 명이 공사관 보호를 명목으로 한성에 들어왔고,

왕과 왕태자는 다음날 이른 아침 궁녀의 가마를 타고 위장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김 - 1896년 2월    

 

 

 

 

 

답 :  

(가) 한성순보

한성순보는 개화파로 인해 박문국에서 발간되었으며,

정부가 발행하는 순한문 신문입니다.

 

① 천도교의 기관지로 발행 - 만세보

③ 신문지법의 적용을 받아 폐간됨 - 황성신문

④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실음 - 황성신문

⑤ 국채 보상 운동을 확산시키는데 기여 - 대한매일신보, 황성 신문 등

 

 

 

 

 

답 :

(가) 갑신정변

김옥균, 박영효등의 급진적 개화 세력은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무너졌고 한성조약을 체결하게 됐습니다.

 

② 구본신참을 개혁의 원칙으로 표방 - 광무개혁

③ 흥선 대원군이 청에 납치되는 원인이 됨 - 임오군란

④ 부산, 원산, 인천이 개항되는 결과를 가져옴 - 강화도 조약

⑤ 김윤식을 청에 영선사로 파견하는 배경이 됨 - 강화도 조약

 

 

 

 

 

답 :

동학농민운동의 농민군  

농민군은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내세우며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에 맞서 싸웠지만, 패했습니다.  

 

① 탁지부에서 국가 재정을 전담할 것을 주장 - 2차 갑오개혁

②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하여 진주성을 점령 - 임술농민봉기

③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반대 운동을 전개 - 보안회

④ 홍경래의 주도로 난을 일으켜 선천, 정주 등을 장악 - 홍경래의 난

 

 

 

 

 

답 :

신민회

신민회는 안창호와 양기탁 등이 조직한 단체입니다.

신민회의 활동으로 안창호의 대성학교, 이승훈의 오산학교 등을 설립했습니다.

 

① 연통제를 통해 독립 운동 자금을 모음 - 대한민국 임시정부

②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 - 신한청년단

④ 관민 공동회를 개최하여 정부에 헌의 6조를 건의 - 독립협회

⑤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주도하다가 통감부에 의해 해산됨 - 대한자강회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