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27회 해설 (36번~40번)

답 :

1910년대 대한광복회

대한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항일단체로 비밀결사체입니다.

총사령은 박상진이며, 복벽주의를 극복하고 공화정체의 근대 국민 국가의 수립을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독립 전쟁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위해 일제의 재산을 빼앗고 부호들에게 재원을 걷었습니다.

 

① 무오 독립 선언서를 발표 - 조소앙, 박은식 등의 독립 운동가 39명

③ 연해주 이주 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 - 신한촌과 권업회

④ 조선 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 일으킴 - 조선의열단의 김익상

⑤ 국권 반환 요구서를 조선 총독부에 제출하고자 함 - 대한독립의군부

 

 

 

 

 

답 :

국채 보상 운동

대한제국은 통감부가 설치된 이후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위한

각종 생활 시설 마련 과정에서 차관을 강요받아 약 1,300만원의 채무를 지게됐습니다.

이에 서상돈, 김광제 등의 지식인들은 경제적 자주권을 위해 국채 보상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① 미국이 운산 금광 채굴권을 가져감 - 아관파천 이후

② 프랑스가 경의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 - 아관파천 이후

④ 러시아가 압록강, 두만강, 을릉도의 삼림 채벌권 차지 - 아관파천 이후

⑤ 중국이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으로 내지 통상권 얻어냄 - 임오군란 이후

 

 

 

 

 

답 :

3.1 운동

 3.1 운동은 민족 자결주의와 도쿄에서 일어난 2.8 독립 운동에 고무되어 추진되었으며,

각계각층의 전 민족이 참여한 독립 운동으로 의의가 있습니다.

 

① 순종의 인산일에 학생들의 주도로 전개 - 6.10 만세 운동

③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간의 충돌로 비롯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④ 성진회와 각 학교 독서회에 의해 전국적으로 확산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⑤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검거 - 6.10 만세 운동

 

 

 

 

 

   

답 :

청산리 대첩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을 중심으로 한 독립군들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에 승리했습니다.

이후 일본은 군인들을 만주에 파견했고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군이 여러 독립군과 연합하여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전개하여 일본군에 크게 승리했습니다.

 

① 조선의용대가 화북 지방에 일본군과 벌인 전투 - 조선 의용대

② 대한 독립군 등이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전투 - 봉오통 전투

③ 한국 독립군이 대전자령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긴 전투 - 대전자령 전투

⑤ 조선 혁명군이 중국 의용군과 함께 연합 작전을 펼쳐 승리 - 흥경성, 영릉가 전투

 

 

 

 

 

답 :

(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륭양행은 중국 단둥에 설립한 무역선박회사로 비밀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① 독립신문을 발행하고 한일 관계 사료집 간행 - 대한민국 임시정부

②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통해 독립 청원서 제출 - 대한민국 임시정부

③ 복벽주의 이념에 따라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키고자 함 - 독립의군부

④ 국외 거주 동포에게 독립 공채를 발행하여 자금 마련 - 대한민국 임시정부

⑤ 구미 위원부를 두어 한국의 독립 문제를 국제 여론화 - 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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