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48회 해설 (1번~10번)

답 : 

(가) 신석기 시대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된 시기는 신석기 시대로 

농경으로 얻어진 식량을 빗살무늬 토기에 저장했습니다.


① 주로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삶 - 구석기 시대 

②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축조함 - 청동기 시대 

③ 거푸집을 이용하여 세형 동검을 제작함 - 철기 시대 

⑤ 쟁기, 쇠스랑 등의 철제 농기구를 사용함 - 철기 시대 






답 : 

고구려 

고구려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제가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인 

제가 회의를 열어 의사 결정했습니다. 고구려의 특징으로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존재했습니다. 


②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엶 - 부여 

③ 혼인 풍습으로 민며느제가 있었음 - 옥저 

④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음 - 동예 

⑤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함 - 삼한






답 : 

(가) 금관 가야 

김해 대성동, 김수로 등으로 금관가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금관가야는 철을 수출할 정도로 철이 유명한 나라로 대표적인 유물로 철기 갑옷이 있습니다. 


① 산수무늬벽돌 - 백제 

② 칠지도 - 백제 

④ 무령왕릉 돌상 - 백제 

⑤ 돌사자상 - 발해






답 :

(가) 백제의 결혼동맹 (493년) 

(나) 성왕의 죽음 (554년) 

백제 동성왕은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에 대비하여 

나제 동맹 이후 결혼 동맹을 통해 신라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이후 백제 성왕 시기 신라와의 연합을 기반으로 한강 유역을 수복했지만 

신라의 배신으로 다시 뺏기게됐고 이후 신라와 싸웠지만 패배하고 성왕도 전사하게 됩니다. 


① 고구려가 낙랑군을 축출함 - 313년

② 백제가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함 - 384년 

③ 신라가 고구려의 도움을 왜를 격퇴함 - 4세기 중엽 

④ 고구려가 동옥저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함 - 56년  






답 :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동맹 (648년)

김춘추는 백제 견제를 위해 고구려에 동맹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고 

이후 당나라에 제안하여 나당 동맹이 체결됐습니다. 

이후 백제와 싸우며 황산벌 전투가 이루어집니다. 






답 : 

(가) 신문왕 

김흠돌의 난, 국학 설립 등으로 신문왕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신문왕은 신라 통일 이후 왕권 강화를 도모했던 왕으로 

왕권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했습니다. 


①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함 - 지증왕 

②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함 - 진흥왕 

④ 최고 지배자의 칭호를 마립간으로 함 - 내물왕 

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함 - 법흥왕






답 : 

신라 말기의 상황 

진성 여왕과 최치원은 신라 말기의 인물로 각종 전란과 봉기가 일어난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일어난 농민 봉기가 원종과 애노의 난입니다.


① 빈민 구제를 위해 의창이 설치됨 - 고려 

③ 복신과 도침이 주류성에 군사를 일으킴 - 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 

④ 묘청 등이 중심이 되어 서경 천도를 주장함 - 고려 

⑤ 부처의 힘을 빌려 외침을 막고자 팔만대장경이 조판됨 - 고려







답 : 

발해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고려와 발해를 추정가능하지만 8세기로 미루어 발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정대는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발해의 기구입니다.


②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 - 신라 

③ 군사 조직을 9서당 10정으로 편성함 - 신라 

④ 골품에 따라 관리 승진에 제한을 둠 - 신라 

⑤ 상수리 제도를 시행하여 지방 세력을 견제함 - 신라







답 : 

자장의 건의로 건립된 것은 첨성대가 아니라 황룡사 9층 목탑입니다. 


① 천마총 - 내부에서 천마도가 수습됨 

③ 동궁과 월지 - 나무로 만든 14면제 주사위가 출토됨

④ 분황사지 -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탑이 남아 있음 

⑤ 불국사 - 경내의 삼층 석탑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됨






답 : 

(가) 공산전투 (927년)

(나) 일리천 전투 (936년) 

공산전투로 고려와 후백제와 싸웠지만 고려가 패배했고 

그 이후 고려는 세력을 일부 잃었지만 신라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경순왕을 사심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또한, 백제는 왕위 다툼으로 견훤이 고려로 망명하면서 

이후 일리천 전투를 통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 통일을 이룹니다. 


①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건의함 - 982년 

③ 대공이 난을 일으키자 귀족들이 동참함 - 768년 

④ 궁예가 국호를 마진에서 태봉으로 바꿈 - 911년 

⑤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가 시행됨 - 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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