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43회 해설 (1~10번)

답 :

(가) 신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된 시대로 신석기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저장하기 위해 빗살 무늬 토기를 사용했고 돌갈판으로 곡식을 갈아 먹었습니다.

또한,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기도 했습니다.

 

① 주로 동굴이나 막집에 거주 - 구석기 시대

③ 명도전을 이용하여 중국과 교역 - 철기 시대

④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음 - 철기 시대

⑤ 의례 도구로 청동 거울과 방울 등을 제작 - 청동기 시대

 

 

 

 

 

답 :

부여의 풍습

고구려의 북쪽에 위치한 부여는 왕이 죽으면 많은 사람을 껴묻거리와 같이 묻는 순장의 풍습이 있으며,

영고라는 제전 행사를 12월에 열어 수렵 사회의 전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① 읍군, 삼로 등의 군장이 있음 - 옥저, 동예

② 혼인 풍속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음 - 옥저

④ 신성 구역인 소도에서 천군이 제사를 주관 - 삼한

⑤ 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라는 풍습이 있음 - 동예 

 

 

 

 

 

답 :

(가) 고구려,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

고구려는 초기에 주로 돌무지무덤을 만들었지만 점차 굴식 돌방 무덤으로 변화해갔습니다. 

굴식 돌방무덤은 돌로 널방을 짜고 그 위에 흙으로 덮는 형태로 천장은 대부분 모줄임 천장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의 벽과 천장에는 무용도, 수렵도, 사신도 등과 같은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① 김해 대성동 57호분 출토 종장 판갑옷 - 금관 가야

② 상경 용천부 석등 - 발해

④ 기마인물 토기 - 신라

⑤ 무령왕릉 출토 진묘수 - 백제

 

 

 

 

 

답 :

신라 법흥왕

법흥왕은 병부와 상대등 설치, 율령 반포와 공복 제정 등으로 통치 질서를 확립했고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김해 지역의 금관 가야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①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복속시킴 - 지증왕

②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 - 신문왕

③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게 함 - 진흥왕

⑤ 자장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을 건립 - 선덕여왕

 

 

 

 

 

답 :

(가) 대가야

경상북도 고령, 합천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대가야는

 전기 가야 연맹의 금관 가야에 이은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했습니다.

 

② 중앙군으로 2군 6위를 설치 - 고려

③ 9주 5소경의 지방 행정 제도를 둠 - 신라

④ 귀족 합의제인 화백 회의를 운영 - 신라

⑤ 왕족인 부여씨와 8성의 귀족이 지배층을 이룸 - 백제

 

 

 

 

 

답 :

(가) 발해 무왕의 업적

1대 왕 대조영을 이은 무왕은 연호를 인안으로 정하고 영토 확장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장문휴의 수군으로 당의 산둥 지방(등주)을 공격하며, 요서 지역에서 당군과 격돌했습니다.

또한, 돌궐, 일본 등과 연결되면서 당과 신라를 견제했습니다.

 

① 낙랑군을 몰아냄 - 고구려 미천왕

② 국호를 남부여로 바꿈 - 백제 성왕

④ 3성 6부의 중앙 관제를 정비 - 발해 문왕

⑤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확립 - 발해 선왕

 

 

 

 

 

답 :

흑치상치의 백제 부흥 운동 (663년)

계백의 황산벌 전투 이후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어 백제가 멸망하고

각 지방의 저항 세력들이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복신과 도침, 흑치상치의 백제 부흥 운동입니다.

이들은 약 200여개의 성을 회복하고 4년간 저항했지만 결국 좌절되었습니다.

 

 

 

 

 

답 :

(가) 신라 골품제도

혈연에 따라 제약이 정해지는 골품제도는 가옥의 규모와 장식물과 같은 신라인의 일상 생활까지 규제했고

관등의 승진 상한선이 골품에 따라 정해지기도 했습니다.

 

① 진대법이 실시되는 배경 - 을파소의 건의

② 원성왕이 인재 등용 제도로 제정 - 독서삼품과

③ 후주 출신인 쌍기의 건의로 실시됨 - 과거제

④ 권문세족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시행 - 전민변정도감

 

 

 

 

 

답 :

최치원이 활동한 신라 하대

신라는 7세기 후반부터 귀족들의 권력 다툼으로 왕권이 약화되었습니다.

특히, 혜공왕 시기 귀족들의 다툼으로 혜공왕이 살해되면서 무열왕계의 왕위 계승이 끊겼습니다.

8세기 후반 이후에는 귀족들이 사병을 거느리고 사치와 향략을 부렸고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지방에서 원종과 애노의 난과 같은 농민 항쟁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① 김흠돌이 반란을 도모 - 신라 중대

②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림 - 고려 성종 시기

③ 원광이 세속 5계를 제시 - 신라 진평왕 시기

⑤ 김춘추가 진골 출신 최초로 왕위에 오름 - 신라 중대

 

 

 

 

 

답 :

(가) 감은사지 3층 석탑

감은사는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하는 염원에 따라 신문왕 2년에 창건되었고

3층 석탑 또한 동일한 시기에 건립되었습니다.

 

② 경주 불국사 다보탑

③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

④ 월정사 8각 9층 석탑

⑤ 익산 미륵사지 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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