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43회 해설 (21번~30번)

답 :

(가) 과전법 실시 (1391년)

(나) 관수관급제 실시 (1470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후 신진사대부와 이성계는 정권을 장악하고 과전법을 실시했습니다.

과전법으로 인해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하여 관료에게 재분배했지만, 수신전과 휼양전과 같은 세습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고 직전법 (1466년)을 통해 수신전과 휼양전이 폐지되었습니다.  

그 후 성종 시기 관수관급제가 실시되어 수조권의 남용으로 관청이 수조권을 대행했습니다.

 

①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 - 722년

②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 - 1901년

③ 관등에 따라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차등 지급 - 고려시대

④ 개국 공신에게 인품, 공로를 기준으로 역분전을 지급 - 940년

 

 

 

 

 

답 :

(가) 조선 성종

성종 시기 경국대전 반포,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 역사서인 동국 통감 등이 편찬되었고

신숙주, 정척 등이 국가의례서인 국조오례의를 편찬했습니다.

 

① 경기도에 한하여 대동법을 실시 - 광해군

② 학문 연구 기관으로 집현전을 설치 - 세종

④ 문하부 낭사를 분리하여 사간원으로 독립시킴 - 태종

⑤ 현량과를 실시하여 신진 사림을 등용하고자 함 - 중종

 

 

 

 

 

답 :

퇴계 이황

이황은 주자서절요, 성학십도 등을 저술했으며, 주자의 이론에 조선의 현실을 반영시키려 했습니다.

또한 기대승과 인간의 심성에 관련하여 사단칠정 논쟁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①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 학파를 형성 - 정제두

②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워 기축봉사를 올림 - 송시열 

④ 다양한 개혁 방안을 제시한 동호문답을 저술 - 이이

⑤ 재상 중심의 정치를 강조한 조선경국전을 편찬 - 정도전  

 

 

 

 

 

답 :

훈련도감

임진왜란 초기 어이없는 패전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군대의 필요성으로 훈련도감이 설치되었습니다.

훈련도감의 군병은 포수, 사수,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성되었고 의무병이 아닌 급료를 받는 직업 군인의 성격을 가졌습니다.

 

①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 - 도방, 삼별초

③ 국경 지역인 북계와 동계에 배치됨 - 고려 지방군

④ 이종무의 지휘 아래 대마도 정벌에 참여 - 수군과 육군

⑤ 국왕의 친위 부대로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둠 - 장용영

 

 

 

 

 

답 :

병자 호란과 삼전도 굴욕

인조 반정 이후 광해군과 달리 후금을 배척하는 정책을 폈고

이에 자극을 받는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군신 관계를 구실로 병자호란을 일으켰습니다.

병자 호란 동안 청은 10일여만에 서울에 이르렀고 서울이 결국 점령되자,

인조는 45일간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지만 결국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습니다.

 

① 삼별초의 이동 경로를 찾아봄 - 대몽항쟁

② 통신사의 활동 내용을 살펴봄 - 임진왜란 이후

③ 위화도 회군의 결과를 알아봄 - 고려 말 개혁 시작

④ 계해약조의 체결 과정을 조사 - 왜구의 무역 요구

 

 

 

 

 

답 :

(가) 예송 전쟁

인조반정 이후 서인과 남인의 붕당 정치가 이루어졌고

현종 시기부터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 관련하여 서인과 남인 사이에 두차례의 예송이 발생했습니다.

 

① 사림과 훈구의 갈등이 원인이 됨 - 사화

③ 북인이 정국을 주도하던 시기에 전개됨

④ 외척 세력인 대윤과 소윤의 대립으로 일어남 - 을사사화

⑤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분열되는 결과를 가져옴 - 정철의 처벌

 

 

 

 

 

답 :

영조의 업적

영조는 정치적인 조정을 통해 탕평책을 펼쳐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진행했습니다.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무역을 재개한 왕은 광해군입니다.  

 

① 속대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 - 영조

③ 동국문헌비고를 간행하여 역대 문물을 정리 - 영조

④ 균역법을 실시하여 군역의 부담을 줄이고자 함 - 영조

⑤ 탕평비를 건립하여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고자 함 - 영조

 

 

 

 

 

 

답 :

열하일기의 박지원

연암 박지원은 대표적인 실학자로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저술했고

상공업의 진흥,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허생전, 양반전 등의 소설 등을 통해 양반들을 비판했습니다.  

 

② 북학의에서 절약보다 적절한 소비를 강조 - 박제가

③ 곽우록에서 토지 매매를 제한하는 한전론을 제시 - 이익

④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 - 유수원

⑤ 색경에서 담배, 수박 등의 상품 작물 재배법을 소개 - 박세당

 

 

 

 

 

답 :

세도 정치 시기 (1800년~1863년)

세도 정치기에는 왕권이 약화되고 중앙 정치는 안동 김씨와 같은 소수의 가문 출신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근과 질병, 자연 재해의 발생으로 민란이 발생하고

비기, 도참등의 예언 사상이 유행하는 등의 민심이 흉흉해졌습니다.

조선통보를 주조하는 시기는 고려말입니다.

 

① 이양선의 출몰을 보고하는 수군 - 세도 정치기

② 군정의 문란으로 고통 받는 농민 - 세도 정치기

③ 삼정어정청 설치를 건의하는 농민 - 세도 정치기

⑤ 왕조의 교체를 예언한 정감록을 읽고 있는 양반 - 세도 정치기

 

 

 

 

 

답 :

단원 김홍도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화가로

밭갈이, 추수, 씨름, 서당 등의 서민들의 특징을 묘사했습니다.

 

① 파적도 - 김득신

② 초충도 - 신사임당

④ 인왕재색도 - 정선

⑤ 세한도 - 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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