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41회 해설 (21번~30번)

답 :

(가) 종묘

종묘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만든 공간으로 가장 먼저 서쪽에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을 완공했고 정궁인 경복궁을 세운 뒤 그 동쪽에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종묘를 완공했습니다.

 

② 공자와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 놓음 - 문묘

③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곳 - 선농단

④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 - 사직단

⑤ 일제에 의해 경내에 조선 총독부 청사를 세움 - 경복궁

 

 

 

 

 

답 :

임꺽정이 활동하던 명종 시기

명종은 12살의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었고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명종의 외척과 인종의 외척이 갈등을 겪었고 결국 을사사화가 발발했습니다.

 

① 청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를 파견 - 효종

② 4군 6진을 설치하여 북방 영토를 개척 - 세종

④ 남인이 축출되고 노론과 소론이 정국을 주도 - 숙종

⑤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뉨 - 선조

 

 

 

 

 

답 :

임진왜란 중 의주 파천 이후 (1592년 6월)의 사실 

왜군은 부산진과 동래성으로 침략하여 성을 함락했고 

충주에서 신립이 탄금대 전투에 왜군에게 패하자, 선조는 의주로 피신했습니다.  

그 이후 의병이 일어나고 명의 원군까지 도착하면서 왜군은 밀려나기 시작하여 휴전을 제의했습니다.

그 이후에 휴전 교섭이 실패하여 다시 공격해왔고 관직에서 물러났던

이순신이 다시 기용되어 명량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했습니다.

 

②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항전 - 1592년 4월 

③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 - 세종 시기

④ 계해약조가 체결되어 세견선의 입항이 허가됨 - 세종 시기

⑤ 조선 정부의 통제에 반발하여 3포 왜란이 일어남 - 세종 시기

 

 

 

 

 

답 :

여전제를 주장한 정약용

실학자 정약용은 이익의 실학 사상을 계승한 학자로

마을 단위로 주민들이 공동 경작하여 생산의 일부를 국가에 내고 나머지를 나누어주자는 여전론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목민심서, 경세 유표 등을 저술하여 국가 제도의 개혁방향을 제시했습니다.

 

① 의산문답에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 - 홍대용

②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여 사상 의학을 확립 - 이제마

③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 - 유수원

⑤ 북학의에서 재물을 우물에 비유하여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 - 박제가

 

 

 

 

 

답 :

균역법

군역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실시된 균역법은 기존의 절반인 군포 1필만 부담하게 했고

그로 인해 감소된 재정은 지주에게 토지 1결당 미곡 2두를 부담하게 했고

일부 상류층에게 선무군관이라는 칭호를 주고 군포 1필을 납부하게 하고

어장세, 선박세 등을 국가 재정으로 귀속시켰습니다.

 

ㄱ.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 - 양지아문, 지계아문

ㄹ. 수신전, 휼양전 등의 명목으로 세습되는 토지를 폐지 - 직전법

 

 

 

 

 

답 :

(가) 조선의 통신사

임진왜란 후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지만,

에도 막부가 집권한 이후 조선에 국교 재개를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① 매년 정기적으로 파견됨 - 명 사절단

② 다녀온 여정을 연행록으로 남김 - 연행사

③ 하정사, 성절사, 천추사 - 사절단

④ 사절 왕래를 위하여 북평관을 개설 - 여진 사절단

 

 

 

 

 

답 :

(가) 사헌부

사헌부는 주로 백관을 감찰하고 기강, 풍속 등을 정립하며, 사법권과 경연을 담당합니다.

또한, 사간원과 함께 대간을 이루어 5품이하 관리의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을 행사합니다.

 

① 사림의 건의로 중종 때 폐지됨 - 소격서

② 왕명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 - 승정원

③ 국왕의 친위 부대로 서울과 수원에 배치 - 장용영

④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을 주관 - 홍문관

 

 

 

 

 

답 :

남인 윤휴

윤휴는 효경, 주례 등의 경전에 대해 독자적인 재해석을 했으며,

숙종 때에는 청의 정세 변화를 계기로 북벌을 주장하였으나 경신환국으로 인해 사형을 당했습니다.

 

① 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 제문을 작성 - 김종직

③ 반계수록에서 토지 제도 개혁론을 제시 - 유형원

④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지적 - 박지원

⑤ 충청도 지역까지 대동법의 확대 실시를 건의 - 김육

 

 

 

 

 

답 :

홍경래의 난 (1811년)

세도 정치 시기 수탈과 차별에 불만을 품은 평안도 지방 사람들은 홍경래를 중심으로 농민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기존 농민 세력에서 중소 상인, 광부, 품팔이꾼까지 세력이 커졌고

선천, 정주 등의 청천강 이북의 여러 고을을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평안도 이외의 지방까지 확장되지 않으면서 봉기는 실패했습니다.

 

① 청의 군대에 의해 진압됨 - 임오군란, 갑신정변

② 백낙신의 탐학이 발단이 되어 일어남 - 진주민란

③ 왕이 도성을 떠나 공산성으로 피란 - 이괄의 난

④ 정부와 약조를 맺고 집강소를 설치 - 동학농민운동

 

 

 

 

 

답 :

조선 후기

일성록과 연경을 왕래하는 상인은 주로 조선 후기에 활동했습니다.

과전법은 조선 초기에 시행되었습니다.

 

① 청화 백자를 제작하는 도공 - 조선 후기

② 시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중인 - 조선 후기

③ 담배 등의 상품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 - 조선 후기

④ 저잣거리에서 이야기책을 읽어주는 전기수 -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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