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점시험 고급 41회 해설 (31번~40번)
- 한국사 (Korean History)/한국사 고급 41회~45회
- 2019. 1. 22. 21:36
답 : ①
(가) 병인박해 (1866년)
(나) 척화비 건립 (1871년)
흥선 대원군은 유생들의 요구에 따라 1866년부터 6년 동안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는 병인박해를 시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프랑스는 1866년 9월에 조선을 무력으로 침략했습니다.
그 이후 오페르트의 도굴 사건,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서양과의 통상 수교를 반대하는
정책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② 일본 군함 운요호가 영종도를 공격 - 운요호 사건 (1875년)
③ 영국군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점령 - 거문도 사건 (1885년)
④ 조선이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하고 천주교 포교를 허용 - 조불수호통상조약 (1886년)
⑤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림 - 영남만인소 (1881년)
답 : ③
조미수호통상조약 (1882년 5월)
강화도 조약 이후 청은 일본을 견제하고자 미국과의 수교를 권고했고
이 과정에서 수신사 김홍집이 조선책략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후 조선 내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서양 국가들 가운데
최초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① 양곡의 무제한 유출 조항을 포함 - 강화도 조약
②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최초로 규정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④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부임하는 계기가 됨 - 1차 한일협약
⑤ 부산, 원산, 인천에 개항장이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옴 - 강화도 조약
답 : ⑤
(가) 동학농민운동의 전봉준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로 인해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농민층들이 봉기했고
보국안민을 기치로 우금치에서 일본군 및 관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고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났습니다.
①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킴 - 최익현, 신돌석 등
② 독립 협회를 창립하고 독립문을 세움 - 서재필
③ 지부복궐척화의소를 올려 왜양일체론을 주장 - 최익현
④ 13도 창의군을 지휘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 - 이인영
답 : ⑤
헤이그 특사 이준
이준은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만민공동회 활동에 참여했고
보안회, 헌정연구회, 신민회 등의 애국계몽운동단체 설립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지만, 회의 참석조차 거부되었고 이준은 자결했습니다.
①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 - 임병찬
② 영군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발간 - 양기탁
③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 발기인 대회를 개최 - 조만식
④ 북간도에 서전서숙을 설립하여 민족 교육을 실시 - 이상설
답 : ①
대한제국 출범 이후의 사실
아관파천이후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연호를 광무라 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내외에 대한 제국이 자주 독립 국가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후 군 통수권 장악을 위해 원수부를 설치했고 근대적 과학 기술을 키우기 위해 상공학교, 의학교 등을 설립했습니다.
ㄷ. 근대식 무기 제조 공장인 기기창이 설립됨 - 개항 이후
ㄹ. 서양식 근대 교육 기관인 육영 공원이 세워짐 - 개항 이후
답 : ②
1919년 9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1차 개헌으로 3권 분립과 대통령제를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국제연맹 위임 통치 요청 문제가 발생했고 임시정부가 와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25년 임시정부는 이승만을 탄핵하고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내각 중심의 국무령제로 2차 개헌했습니다.
답 : ④
의열단
의열단은 1919년 만주 길림에서 김원봉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단체로
나석주, 박재혁, 최수봉 등이 폭탄을 던지는 거사를 행했습니다.
1923년에는 김원봉의 요청에 따라 신채호가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했고
이는 의열단의 행동 지침과 목표를 나타냈습니다.
① 김구에 의해 상하이에서 결성됨 - 대한민국 임시정부
②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 - 보안회
③ 고종의 강제 퇴위를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 - 대한자강회
⑤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해제됨 - 신민회
답 : ②
(가) 미주 지역의 독립 운동
1903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이민으로 정착하게된 미주 지역의 교민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인 국민회를 중심으로 독립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914년 박용만은 하와이에서 대조선 국민국단을 결성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① 권업신문을 발간하여 민족 의식을 고취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③ 대한 광복군 정부를 세워 무장 독립 투쟁을 준비 -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④ 신한청년당을 결성하여 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 - 중국 상하이
⑤ 조선 청년 독립단을 중심으로 2.8 독립 선언서를 발표 - 일본
답 : ②
(가) 지청천
일본 육사 출신인 지청천은 1931년 북만주에서 한국 독립군을 결성하고 중국군과 연합하여
토일군 또는 호로군을 조직하여 쌍성보, 사도하자, 대전자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했습니다.
① 숭무 학교를 설립하여 독립군을 양성 - 이근영
③ 독립군 비행사 육성을 위해 한인 비행 학교를 세움 - 노백린
④ 독립군 연합 부대를 이끌고 청산리 전투에서 승리 - 김좌진
⑤ 일제 패망과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 - 여운형
답 : ③
역사학자 박은식
박은식은 서북학회, 황성신문 주필 등으로 활동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는 국혼 사상을 언급한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을 저술하여 일제의 침략을 규탄했습니다.
① 진단 학회를 창립하고 진단 학보를 발행 - 이병도
② 여유당전서를 간행하고 조선학 운동을 주도 - 정인보
④ 독사신론을 저술하여 민족주의 사관의 기초를 마련 - 신채호
⑤ 조선사회경제사에서 식민 사학의 정체성 이론을 반박 - 백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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