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40회 해설 (21번~30번)

답 :

(가) 중인

중인은 양반과 상민의 중간 계층으로 기술관과 서얼 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영조, 정조 시기에 서얼이 등용되기 시작하자, 서얼은 수차례에 걸쳐 적극적으로 상소하여

관직 진출의 제한을 없애 줄것을 요구하는 소청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① 매매, 증여, 상속의 대상이 됨 - 노비

② 장례원을 통해 국가의 관리를 받음 - 노비

③ 공장인에 등록되어 수공업 제품 생산을 담당 - 수공업

④ 양인이지만 천역을 담당하는 신량역천으로 분류됨 - 신량역천

 

 

 

 

 

답 :

(가)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

정선은 서울 근교와 강원도의 명승지를 두루 답사하여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진경산수화를 개척해냈습니다.

그림의 특징으로는 바위산을 선으로 그려내고 흙산은 묵을 묘사하는 기법을 사용하여

대표작으로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등이 있습니다.

 

① 인왕제색도 - 정선

② 영통동구도 - 강세황

③ 몽유도원도 - 안견

④ 세한도 - 김정희

⑤ 고사관수도 - 강희안

 

 

 

 

 

답 :

(가) 홍문관

홍문관은 별칭으로 옥당으로도 불리며, 주로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을 주관하거나

문한의 처리, 왕에게 자문을 하기도 합니다.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 - 한성부

② 고려의 삼사와 같은 기능을 수행 

 ③ 실록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 - 춘추관

⑤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을 처결 - 의금부

 

 

 

 

 

답 :

전기수가 활동하는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는 소설이 증가하면서 점차 대중적으로 퍼져나갔고

소설을 읽고 일정한 보수를 받는 전기수가 등장했습니다.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는 고려 시대 성종 때 주조되었습니다.

 

②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재배됨 - 조선 후기

③ 독점적 도매상인인 도고가 활동 - 조선 후기

④ 여러 장시가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됨 - 조선 후기

⑤ 송상,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적 - 조선 후기

 

 

 

 

 

답 :

인조 반정 (1623년)

광해군은 즉위한 뒤 왕권의 안정을 위해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 대비를 유폐시키는 유교 윤리에 어긋하는 정치를 했고

이를 빌미로 서인이 인조 반정을 일으키면서 광해군이 왕위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② 외척 간의 갈등으로 을사사화가 일어남 - 1545년

③ 조의제문이 발단이 되어 김일손 등이 처형됨 - 1498년

④ 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로 기축옥사가 발생함 - 1589년

⑤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 - 1575년

 

 

 

 

 

답 :

(가) 비변사

비변사는 본래 여진족과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임시 기구로 설치되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조직과 기능이 확대되었고 의정부와 6조의 행정 체계가 유명 무실해지면서

세도 정치 시기에는 외척의 세력 기반이 되었습니다.

 

ㄱ. 왕명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 - 승정원

ㄷ.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의 건의로 혁파 - 소격서

 

 

 

 

 

답 :

진주 민란 (1862년)

세도 정치 시기 일어난 진주 민란은 경상 우병사 백낙신과 향리들의 수탈에 못이겨

농민들과 몰락한 양반 출신인 유계춘 등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습니다.

농민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안핵사로 파견된 박규수는 삼정이정청을 설립하여 환곡의 폐단을 고치고자 했습니다.

 

 

 

 

 

답 :

(가) 정묘호란 강화 (1627년)

(나) 백두산 정계비 건립 (1712년)

이괄의 난을 명분으로 쳐들어온 후금은 조선과 싸우다 보급로가 끊기면서 강화를 제의하고 철수했고

그 이후에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후금(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강화를 맺었습니다.

인종의 뒤를 이은 효종은 청에 복수하자는 북벌 운동을 펼쳤습니다.

특히, 러시아가 청을 공격하자 조선은 두 차례에 걸처 조총 부대를 파견하여 러시아 군대와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② 명의 요청에 따라 강홍립이 이끄는 부대가 파병 - 1619년

③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여 이괄이 평안도에 주둔 - 1624년

④ 용골산성에서 정봉수와 이립이 의병을 이끌고 항전 - 정묘호란 강화 이전

⑤ 포수, 살수, 사수의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이 설치됨 - 1593년

 

 

 

 

 

답 :

북학파 실학자인 박제가

초정 박제가는 박지원의 제자로 청에 다녀온 후 북학의를 저술하여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했습니다.

또,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되어 활동했습니다.

 

①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풍자 - 박지원

②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처음으로 고증 - 김정희

④ 곽우록에서 토지 매매를 제한하는 한전론을 제시 - 이익

⑤ 우서를 통해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 - 유수원

 

 

 

 

 

답 :

(가) 병인 양요 (1866년)

병인 양요는 프랑스 병인 박해 때 자국의 선교사 처형을 구실로 1866년 9월에 침공한 것으로

강화도 강화읍을 점령하여 외규장각 등을 불태우고 의궤와 금, 은 등을 약탈했습니다.

그 이후 서울로 진격하던 프랑스 군은 양헌수가 거느린 군대에 의해 정족산성 전투에서 격퇴당했습니다.

 

ㄱ.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저지시킴 -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ㄷ.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 - 신미양요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