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38회 해설 (11번~20번)

답 : ③

(가) 후백제를 세운 견훤

견훤은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으며,

중국인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후계 문제를 놓고 맏아들 신검과 갈등을 겪었으며,

신검이 형제인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감금했습니다.

 

① 김흠돌의 반란을 진압 - 신문왕

②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됨 - 경순왕

④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 - 궁예

⑤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 - 고려 태조

 

 

 

 

 

답 :

(가) 광종의 과거제 실시 (958년)

(나) 성종의 시무 28조 건의 (982년)

광종은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 제도를 시행했고

유학을 익힌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신구 세력의 교체를 도모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경종은 처음으로 직관, 산관 각 춤의 전시과가 제정됐고

그 뒤에 즉위한 성종은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건의하여 유교 중심으로 통치 체제를 정비했습니다.

 

① 국가 주도로 해동통보가 발행됨 - 1102년

② 인사 행정을 담당하던 정방이 폐지됨 - 1389년

③ 관학 진흥을 위해 전문 강좌인 7재가 개설됨 - 1109년

④ 호구의 정확한 파악을 위해 호패법이 실시됨 - 1402년

 

 

 

 

 

답 :  

(가) 삼별초

무신정권에서 설치된 삼별초는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몽골과의 강화 성립되어 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진도와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항쟁했습니다.

 

① 승려 출신으로 구성된 항마군이 있었음 - 별무반

② 여진을 정벌하여 동북 9성 일대를 확보 - 별무반

③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는 과정에서 설치됨 - 광군

④ 경대승이 신변 보호를 위해 만든 사병 조직 - 도방

 

 

 

 

 

답 :

(가) 삼국사기

(나) 제왕운기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때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것으로

고조선의 건국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왕운기는 고려 충렬왕 시기 이승휴가 운문체로

서술한 역사시로 고조선의 건국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① 사초,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실록청에서 편찬 - 조선왕조실록

②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 등을 수록 - 삼국유사

④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됨 - 조선왕조실록

⑤ 고구려 건국 시조의 일대기를 서사시 형태로 서술 - 동명왕편

 

 

 

 

 

답 :

(가) 전민변정도감 

전민변정도감은 고려 후기 권세가에게 점탈된 토지와 농민을 바로잡기 위해

설치된 임시관서로서 고려 원종시기에 최초로 설치되었습니다.

이후 공민왕 때 내정 개혁의 일환으로 운영되었습니다. 

 

① 원 간섭기에 첨의부로 격하됨 - 중서문하성과 상서성 

② 고려 말에 도평의사사로 명칭이 바뀜 - 도병마사

③ 소속 관원이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림 - 어사대

⑤ 최씨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 기구로 활용됨 - 교정도감

 

 

 

 

 

답 :

동감통감 편찬이 완성된 성종 시기

조선 성종은 경국대전을 편찬, 반포했고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악학궤범을 편찬했습니다.

 

① 주자소가 설치되어 계미자가 주조됨 - 태종

② 전통 한의학을 정리한 동의보감이 완성됨 - 광해군  

④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됨 - 태종 

⑤ 한양을 기준으로 한 역법서인 칠정산 내편이 편찬됨 - 세종  

 

 

 

 

 

답 :

(가) 조선경국전을 지은 정도전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1등 공신이며 급진파 사대부로

조준 등과 함께 과전법을 주도하고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편찬했습니다.

그리고 유학의 입장에서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했습니다.

 

②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 - 한명회, 권람 등

③ 일본에 다녀와서 해동제국기를 편찬 - 신숙주

④ 기축봉사를 올려 명에 대한 의리를 내세움 - 송시열

⑤ 성학십도에서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 - 이황

 

 

 

 

 

답 :

(가) 무오사화 (1498년)

(나) 위훈삭제사건 (1519년)

연산군은 사림 세력의 분방한 언론 활동을 억제했고

그로 인해 김일손의 김종직 조의제문 사초 기재 문제로 인한 무오사화,

폐비 윤씨 사사문제로 인한 갑자사화이 발생하면서 영남 사림의 대부분이 몰락했습니다.

이후 중종 시기 위훈 삭제로 인한 반정 공신들의 반발로 조광조 등의 사림 세력 대부분이 제거됐습니다.

 

① 외척 간의 권력 다툼으로 윤임이 제거됨 - 을사사화 (1545년)

② 인현 왕후가 폐위되고 남인이 권력을 장악 - 기사환국 (1689년)

③ 공신 책봉에 불만을 품고 이괄이 반란을 일으킴 - 인조 반정이후 (1624년)

④ 이조 전랑 임명을 둘러싸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뉨 - 1575년

 

 

 

 

 

답 :

(가) 조선의 시전상인

조선은 상업 활동을 통제를 강화하면서 개경에 있던 시전 상인을 한양으로 이주시켜

장사하게 대신에 점포세와 상세를 거두었습니다. 시전 상인은 왕실이나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에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판매권을 부여받았고 국역을 담당하는 대가로 사상인 난전을 단속할 수 있는 권리인

금난전권의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① 혜상공국을 통해 보호받음 - 지방 장시 보부상

③ 전국에 송방이라는 지점을 설치 - 개성의 송상

④ 책문 후시를 통해 대청 무역을 주도 - 의주의 만상

⑤ 포구에서 중개, 금융, 숙박업 등에 주력 - 객주나 여각

 

 

 

 

 

답 :

병자호란 (1936년)

인정반정으로 집권한 서인과 인조는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했습니다.

그 후 후금이 세력을 키워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침입하여 병자호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조선은 청의 요구에 굴복하여 삼전도 3배 9고두를 당했고

이후 효종은 오랑캐에 당한 수치를 씻고 청에 복수하자는 의식으로 북벌운동을 준비했습니다.

 

① 북방에 4군 6진이 개척됨 - 세종 시기

② 이종무에 의해 대마도가 정별됨 - 세종 시기

④ 계해약조가 체결되어 세견선의 입항이 허가됨 - 세종 시기

⑤ 외적에 대비하기 위해 비변사가 처음으로 설치됨 - 중종 시기 3포 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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