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38회 해설 (21번~30번)

답 :

공납의 개혁안인 대동법

대동법은 공납의 폐단과 국가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 실시한 것으로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시험적으로 시행되고 이후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이후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납부하는 공인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① 양반에게도 군포를 납부하게 함 - 호포제

② 풍흉에 따라 9등급을 나누어 전세를 부과 - 전분 6등급, 연분 9등법

③ 어장세, 염전세, 선박세를 거두어 군사비로 충당 - 균역법

④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주에게 결작을 징수 - 균역법

 

 

 

 

 

답 :

풍속화가 유행한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는 풍속화가 주로 유행했고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 등이 유명했습니다.

직전법은 조선 세조 시기 시행되어 수신전과 휼양전을 폐지하고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했습니다.

 

① 생선을 팔고 상평통보를 받는 상인 - 조선 후기

② 장시에서 탈춤 공연을 벌이는 광대 - 조선 후기

③ 시사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중인 - 조선 후기

⑤ 고추, 인삼 등을 상품 작물로 재배하는 농민 - 조선 후기

 

 

 

 

 

답 :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68년)

병인 양요 이후 오페르트를 비롯한 서양인들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신미양요까지 발발하면서 서양인에 대한 배척이 심해졌습니다.

 

 

 

 

 

답 :

탕평책의 영조

영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붕당의 균형을 이루는 탕평책을 펼쳤고

법전인 속대전, 의례서인 속오례의, 역대문물을 정리한 동국문헌비고 등을 편찬했습니다.

 

①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을 설치 - 성종

② 국경을 정한 백두산 정계비를 건립 - 숙종

③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경복궁을 중건 - 고종

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고자 삼정이정청을 설치 - 철종

 

 

 

 

 

답 :

실학자 연암 박지원

박지원은 대표적인 북학파 실학자로 열하일기를 통해

상공업의 진흥과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허생전, 양반전 등을 통해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지적했습니다.

 

①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 학파를 형성 - 정제두

②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됨 - 박제가, 유득공 등

④ 의산문답에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 - 홍대용

⑤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내세움 - 유수원

 

 

 

 

 

답 :

(가) 훈련도감

임진왜란 초기 어이없는 패전으로 새로운 군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훈련도감이 설치되었습니다. 훈련도감의 군병은 포수, 사수,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성되었으며, 

 급료를 받는 상비군이 주축을 이루어 직업 군인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① 수원 화성에 외영을 둠 - 장용영

② 국경 지대인 양계에 설치됨 - 고려의 지방군

③ 후금과의 항쟁 과정에서 창설됨 - 어영청

⑤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구성된 친위 부대 - 고려의 중앙군

 

 

 

 

 

답 :

조미수호통상조약 (1882년 5월)

청에 다녀온 수신사 김홍집은 조선책략이라고 하는 책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미국과의 통상 필요성이 대두되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은 거중 조정 조항, 수출입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항 등이 있었고

특히 최혜국 대우 조항이 포함되었습니다.

 

② 천주교 선교를 인정하는 근거가 됨 - 프랑스와의 수호조규조약

③ 양곡의 수출을 허용하고 관세를 설정하지 않음 - 강화도 조약 이후 통상장정

④ 스티븐스가 외교 고문으로 부임하는 계기가 됨 - 2차 한일 협약

⑤ 부산, 원산, 인천에 개항장이 설치되는 결과를 가져옴 - 강화도조약

 

 

 

 

 

답 :

(가) 천주교를 박해한 신유박해 (1801년)

순조가 즉위한 직후 전순왕후의 수렴청정과 함께 노론벽파가 집권하고

시파 남인계열에 대한 탄압의 일환으로 대탄압이 가해졌고 이승훈, 정약종, 주문모등

300여명의 신도가 처형당했고 정약용 등이 유배당했습니다.

 

① 정여립의 모반 사건이 계기가 됨 - 호남 동인의 몰락

② 최제우가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됨 - 동학의 탄압

③ 홍경래 등의 봉기로 정주성이 점령됨 - 농민봉기

⑤ 사건의 수습을 위해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됨 - 임술농민봉기

 

 

 

 

 

답 :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에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되어 박원명의 회유에 의해 해산되었고

안핵사 이용태에 의한 정부의 탄압에 반발하여 재봉기했습니다.

 그리고 황토현 전투와 황룡촌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전라도 일대를 점령했습니다.

 

① 외규장각 도서의 약탈 과정을 살펴봄 - 병인양요

②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려안 배경을 분석 - 갑신정변 이후

③ 아관 파천 이후 열강의 이권 침탈 사례를 조사 - 아관파천 이후

⑤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파견된 특사의 활동 내용을 파악 - 헤이그 특사

 

 

 

 

 

답 :

임오군란 (1882년 6월) 이후의 사실

신식 군대인 별기군에 비해 구식 군인들에 대한 대우가 열악하여

지급된 쌀에 모래가 섞여 있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인들이

선혜청을 습격하여 임오군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 고관들의 집을 부수고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여 일본인 교관이 죽었습니다.

이에 청은 군대를 투입하여 군란을 진압하고 흥선 대원군을 자국으로 납치했습니다.

한편 일본은 군란의 책임을 정부에 물어 일본 공사관 경비병의 주둔을 인정한 제물포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①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건립됨 - 신미양요 이후 (1871년)

②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됨 - 강화도 조약 이후 (1876년)

③ 왕조의 통치 규범을 재정비한 대전통편이 편찬됨 - 1785년

④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림 - 18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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