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42회 해설 (11번~20번)

답 :

(가) 후백제 견훤

상주의 군인 출신인 견훤은 900년에 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웠습니다.

견훤은 이후 중국인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맺기도 하고

927년에는 대야성을 점령하고 경애왕을 자결케하고 왕건의 고려군을 공산 전투에서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① 양길의 휘하에서 세력을 키움 - 궁예

③ 광평성 등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 - 궁예

④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에 패배 - 신검

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으로 천도 - 궁예

 

 

 

 

 

답 :

고려시대의 경제 상황

고려의 상업은 도시 중심으로 발전하여 개경에 시전을 설치하여 관청과 귀족이 주로 이용하게 했고

경시서를 두어 상행위를 감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개경, 서경 등의 도시에 서적점, 다점 등의 관영 상점을 두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건원중보, 삼한통보, 해동통보 등의 동전과 호리병 모양의 활구인 은병이 만들어졌습니다.

 

①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음 - 고구려

②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이 전개됨 - 통일 신라

④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을 널리 재배 - 조선 후기

⑤ 일본과의 무역을 허용하고 계해약조를 체결 - 조선 전기

 

 

 

 

 

답 :

(가) 고려 태조 왕건

고려 태조는 즉위 후 조세 제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세율을 10분의 1로 낮추고 흑창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했습니다.

그리고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기인과 사심관제도를 실시했습니다.

 

①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중시 - 고려 태조

② 민생 안정을 위해 흑창을 설치 - 고려 태조

③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음 - 고려 태조

④ 국자감에 7재라는 전문 강좌를 개설 - 고려 예종

⑤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 - 고려 태조

 

 

 

 

 

답 :

(가) 강감찬의 건의에 따라 천리장성의 축조 (1033년~1044년)

(나) 거란의 2차 칩입과 양규의 흥화진 전투 (1010년) 

(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1135년)

(라)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지방 일대에 9개의 성을 쌓음 (1107년)

 

 

 

 

 

답 :

(가) 관촉사 석조 미륵 보살 입상

충남 논산 은진면에 소재한 관촉사 미륵 보살 입상은 968년 광종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고려 시대 최대의 석불 입상이며, 은진 미륵이라고도 불립니다.  

 

①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 - 백제

③ 합천 치인리 마애불 입상 - 통일 신라

④ 파주 용미리 석불 입상 - 고려

⑤ 경주 배동 삼존 여래 입상 - 신라  

 

 

 

 

 

답 :

(가) 몽골

저고여 피살 사건으로 몽골의 1차 침입이 있었고 몇번의 승전이 있었지만,

개경이 포위되어 강화가 성립되고 물러갔습니다. 하지만, 그 후 설치한 다루가치 72인이 피살되자, 2차 침입을 강행했습니다.

당시 최우 무신 정권은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저항했고 처인성 전투에서

김윤후의 활약으로 살리타이 장수가 죽으면서 몽골군이 후퇴했습니다.

그 후 6차 침략까지 강행되었고 장기간의 싸움으로 피해가 막심해진 고려는 몽골과 강화를 하고 무신정권은 몰락했습니다.

 

①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항전 - 몽골의 2차 침입

② 김윤후가 처인성 전투에서 활약 - 몽골의 2차 침입

③ 화포를 이용하여 진포에서 대승을 거둠 - 왜구

④ 다인철소 주민들이 충주 지역에서 저항 - 몽골의 6차 침입

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판을 만듦 - 몽골의 3차 침입

 

 

 

 

 

답 :

(가) 승정원

 승정원은 왕의 비서 기관이자, 왕명을 출납하는 기관으로 도승지, 좌승지, 우승지 등의 6인의 승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맡아봄 - 한성부

② 화폐와 곡식의 출납과 회계를 맡음 - 고려의 삼사

③ 5품 이하의 관원에 대한 서경권을 가짐 - 사헌부와 사간원

⑤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에 관한 업무를 관장 - 사역원

 

 

 

 

 

답 :

삼국유사 (1281년), 제왕운기 (1287년) 이후의 사실

충렬왕 시기에 저술된 일연의 삼국유사는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나 전래 기록을 수록했고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운문체로 서술한 역사시로 단군의 역사까지 포함했습니다.

그 후 충선왕 시기 망권당을 세우고 이제현과 같은 성리학자들은 원의 학자들과 교류하게 했습니다.

 

①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가 도입됨 - 958년

③ 최충이 유학을 교육하는 9재 학당을 설립 - 10세기말

④ 망이, 망소이가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 - 1176년

⑤ 의천이 불교 교단 통합을 위해 천태종을 창시 - 11세기 말  

 

 

 

 

 

답 :

(가) 개성

최충헌의 사노인 만적은 노비들과 규합하여 개성에서 신분 해방 운동을 시도했지만 사전에 계획이 발각되어 실패했습니다.

 

① 인조가 피신하여 청군에 항전 - 강화도

②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됨 - 서울 덕수궁

③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 - 충남 예산

⑤ 현존 최고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됨 - 청주

 

 

 

 

 

답 :

(가) 칠정산을 만든 이순지

세종 시기 이순지, 정흠지, 정인지 등이 중국의 수시력과 아라비아의 회화력을 참고하여 칠정산 외편을 만들었고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울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한 칠정산 내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①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 - 정약용

② 최초로 100리 척 축척법을 사용하여 지도를 만듦 - 정상기

③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한 역법서를 저술 - 정약용

⑤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는 사상 의학을 확립 - 이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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