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 36회 해설 (21번~30번)

답 :

효종의 업적

병자호란의 결과로 청에 인질로 잡혀있던 효종은 즉위 후 북벌을 나라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삼았고

송시열, 이완 등과 함께 군대 양성에 힘을 기울였으나, 북벌을 실천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어 청이 이후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고 이에 조선은 두 차례에 걸쳐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출병시켜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① 신무기인 신기전이 개발됨 - 세종

③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이 조직됨 - 정조

④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됨 - 우왕

⑤ 명의 요청으로 강홍립의 부대가 파병됨 - 광해군

 

 

 

 

 

답 :

정묘호란 (1627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 이후 친명 배금 정책을 추진했고

논공행상 등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난을 일으켰고 진압됐고

그의 잔당들이 후금으로 피신하여 조선 침입을 종용했고

후금은 광해군을 위해 보복한다는 명분으로 정묘호란을 일으켰습니다.

 

①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물리침 - 임진왜란

② 김종서가 여진을 몰아내고 6진을 개척 - 세종 시기

③ 위훈 삭제를 주장한 조광조 일파가 축출됨 - 중종 시기

④ 기유약조의 체결로 일본과의 국교가 재개됨 - 임진왜란 이후

 

 

 

 

 

답 :

(가) 대동법

대동법은 방납의 폐단을 개선하고 부족한 국가 재정을 보완하고

농민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한 개혁론이 제기되어 실시했습니다.

초기에는 경기도에 시험적으로 시행되었고 김육의 건의로 삼남 지방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납부하는 공인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①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 - 호포제

② 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쌀 4두를 거둠 - 균역법  

③ 어세, 염세, 선세를 균역청에서 관할하게 함 - 영정법

⑤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주에게 결작을 부과 - 균역법

 

 

 

 

 

답 :

북학파 실학자 홍대용

홍대용은 손수 혼천의를 만들어 천체를 관측했고 의산문답을 저술하여

지전설을 주장하여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비판했습니다.

 

①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 - 약용

② 북학의에서 수레와 배의 이용을 강조 - 박제가

③ 양반전에서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지적 - 박지원

⑤ 우서에서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과 전문화를 주장 - 유수원

 

 

 

 

 

답 :

임진왜란이 발발하고나서 조선 정부는 신립 장군을 보내 충주에 방어선을 펼치게 됐습니다.

신립은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쳤으나, 실패하고 강물에 투신 자결했습니다.

 

① 반구대 암각화로 보는 선사 시대 생활 - 울산

② 고액 소작료에 반발한 암태도 소작 쟁의 - 전남 신안

④ 신미양요의 발단이 된 제너렬 셔먼호 사건 - 평양

⑤ 벽란도에서 이루어진 고려와 송의 국제무역 - 개성

 

 

 

 

 

답 :

(가) 비변사

비변사는 본래 여진족과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임시회의기구로 설치했으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점차 상설화되고 비변사의 기능이 강화됐고

국가의 사무를 소수의 당상들이 회의하여 결정했습니다.

어사대의 관원과 중서문하성의 낭사로 구성된 것은 고려시대 대간입니다.

 

①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구화됨 - 비변사

② 흥성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혁파됨 - 비변사

③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조직과 기능이 확대됨 - 비변사

 ④ 세도 정치 시기에 외척 세력의 권력 기반이 됨 - 비변사

 

 

 

 

 

답 :

숙종의 환국

숙종은 인사관리를 통해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는 탕평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한 당파가 정권을 모두 위임하는 편당적인 인사관리로 일관하여

서인과 남인간에 대립이 심했고 이에 따른 환국이 발생했습니다.

 

① 이조 전랑 임명 문제와 동, 서 분당 - 선조

③ 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촉발된 기해예송 - 현종

④ 세자 추승을 둘러싼 시파와 벽파의 갈등 - 영조

⑤ 외척 세력인 대윤과 소윤의 대립으로 일어난 을사사화 - 명종

 

 

 

 

 

답 :

균역법의 영조

영조는 탕평책을 펼치며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탕평비를 세웠고

군역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균역법을 시행했습니다.

또한, 속대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했습니다.

 

ㄷ.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경복궁을 중건 - 흥선대원군

ㄹ. 신해통공으로 시전 상인의 특권을 축소 - 정조

 

 

 

 

 

답 :

김홍도와 중인들의 시사가 일어난 조선 후기임을 알 수 있고

조선 후기에는 노래와 사설로 줄거리를 풀어가는 판소리가 발달했습니다.

 

① 성현 등이 악학궤범을 편찬 - 세종 시기

② 정철이 관동별곡, 사미인곡 등의 작품을 지음 - 선조 시기

④ 서거정이 역대 문학 작품을 선별하여 동문선을 편찬 - 조선 전기

⑤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간행 - 고려 후기

 

 

 

 

 

답 :

사상의 활동이 활발했던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는 시전상인과 공인 외에도 사상들이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직전법에 의해 토지의 수조권을 지급받았던 시기는 조선 전기 세조 시기입니다.

 

① 이앙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민 - 조선 후기

② 상평통보로 토지를 매매하는 양반 - 조선 후기

③ 공명첩을 통해 면역의 혜택을 받는 상민 - 조선 후기

④ 한강을 무대로 운송업에 종사하는 경강상인 -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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